<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Rogue One: A Star Wars Story, 2016

지금부터가 역전

누구에게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지 않나요?

저는 ‘약자가 반란을 시작할 때’가 그렇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을 봤습니다. 희열을 느끼도록 설계한 많은 장치들이 있었지만 저는 최약팀이 의기투합해 강팀을 이길 때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밤과 낮이 전복되는 춘분에 역전이 만드는 희열을 전할 영화를 소개합니다.

‘스타워즈가 무슨 내용이야?’는 질문은 정말 어렵습니다. 이 방대한 이야기를 언제, 누구 시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죠. 제게는 ‘반란하는 영화’입니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는 그 반란의 시작을 다룹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스타워즈 입문작으로 추천합니다.

이후의 시점, 즉 절대 권력 제국에 대항하는 미약한 반란군의 ‘스타워즈’가 <로그 원> 속 인물들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은 큰 매력이자 앞서 말한 저의 ‘카타르시스 포인트’에 명중합니다.

<로그 원> 속 팀 ‘로그 원’은 영웅이라 불릴 수 없는 자들로 이루어졌습니다. 도둑, 스파이, 배신한 제국 파일럿, 패잔병 등 사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깜깜한 어둠을 경험한 이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가장 절실하게 반란의 첫 불씨를 피웠을지도 모릅니다.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는 디즈니+를 통해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반란 조직이 꿈틀대기 시작하는 시점의 콘텐츠를 꾸준히 공개하고 있습니다. 무서우리만치 적막했던 밤을 깨는 그 미미한 빛의 첫 순간을 관찰하고 싶은 건 저뿐만이 아닌 듯합니다.

편안한 균형감각, 종묘 정전

종묘

낮과 밤이 같아지는 날인 춘분입니다. 언젠가부터 낮이 참 눈에 띄게 길어졌다 느꼈는데, 어느새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 찾아왔습니다.

따뜻한 봄을 그리워하며 겨울이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머지않아 뙤약볕을 참아가며 시원한 겨울 공기를 기다릴 것이라는걸, 우리는 수십 번의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럴 때 찾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중간, 적당함입니다. 변화무쌍한 계절을 견디다 못해 우리는 이렇게 푸념합니다. "도대체 중간이 없어, 중간이!"

중간에서 오는 균형감각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편안함을 가져다주는지 깨닫게 되는 춘분입니다.

공간도 역시, 비대칭으로 재미를 주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대칭을 통해 편안함과 위엄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건축물 종묘가 그렇습니다.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 사당으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종묘의 정전은 전기와 후기에 걸쳐 여러 차례 증축되었음에도 좌우의 대칭을 통해 마치 처음부터 하나로 지은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렇듯 종묘 정전은 수차례의 증축을 통해 19칸, 100m가 넘는 길이의 건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전을 정면으로 마주 보면 100m가 넘는 길이의 건물임에도 지붕 선이 반듯한 수평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건물의 기둥 높낮이를 다르게 설계해 정면 원거리에서 봤을 때 일정한 높이처럼 보이도록 한 의도적인 장치입니다. 만약 모든 기둥의 높이를 같게 했다면 지붕의 중앙이 낮은 곡선의 형태로 보였을 것입니다.

철저히 건물 사용자가 아닌 바라보는 사람을 의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종묘 정전의 대칭은 기둥이라는 자재 높이의 공평함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서 오는 것입니다. 종묘 정전을 바라보고 있는 방문객은 대칭이 주는 경관에서 편안함과 엄숙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주변 사람보다 더 쉬지 못할 때, 더 일하지 못할 때, 더 즐기지 못할 때 속상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가장 편안해 하는 삶의 균형감각을 찾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종묘 정전이 기둥 자재의 동일한 높이 대신 바라보는 시선이 느끼는 대칭을 선택해 편안한 균형감각을 불러일으키듯 말입니다.

낮과 밤의 균형감각을 느끼는 춘분입니다. 익스트림한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더위를 잠시 잊고 춘분이 주는 적당히 편안한 대칭을 느끼며 삶의 균형감각을 다시 찾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종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57

화요일 휴무

*토, 일요일, 공휴일,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은 자유 관람

봄바람, 꽃바람, 콧바람

이제 마당에는 매화가 지고 벚꽃 망울이 맺혀있다. 여기저기에서 봄꽃축제 소식이 들려온다.

오일시장에 가면 온갖 봄꽃들이 아직은 이른 날씨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다. 겨우내 비어있던 가판대가 화사한 꽃으로 가득 차 있다. 눈을 마주치면 나를 데려가라고 손을 흔드는 것 같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몇 개의 화분을 꼭 사게 된다.

온실 속에서 때 이르게 핀 꽃이지만 보고 있으면 눈이 화사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당 꽃밭을 정리하면서 비어있는 곳에 무슨 꽃을 심을까, 텃밭을 일구면서 올해는 어떤 작물을 심어볼까 여러 가지 궁리를 한다.

뭔가를 심기도 전에 마음에 먼저 꽃이 피고 수확도 한다.

3월이 지나면서는 꽃밭보다 텃밭 작물에 관심을 더 두게 된다. 그리 넓지도 않은 텃밭에 매번 생각보다 다양한 작물을 심게 된다. 모종을 조금만 사야지. 마음먹고 가지만 돌아올 때는 항상 처음 다짐보다 많은 모종이 들려있다. 그렇게 많은 꽃모종, 농작물 모종들을 들이게 된다.

봄은 항상 설렘을 준다. 꽃모종을 심으면서 화사한 꽃밭을 상상하며 설렌다. 고추, 오이, 가지 등 모종들을 심으면서 여름의 결실을 상상하며 설렌다.

발목 위로 잔뜩 끌어올려 신던 양말을 벗고 발목을 드러내고 다닐 수 있어서 설렌다. 나는 시장에 모여있는 봄꽃에서도 봄을 느끼지만, 발목을 드러내도 춥지 않은 옷을 입을 수 있을 때 정말 봄이구나 확신하게 된다.

지금, 그때가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다.

이제 서서히 나의 발목이 봄바람을 느낄 때가 되었다.

나의 발목이 봄바람을 느낄 때 나는 콧바람 쐬러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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