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를 실감나게 보내는 네 가지 방법 상강
창밖을 바라보는 날이 많아진 요즘입니다. 오늘도 회사 밖을 보면서 팀원과 날씨 얘기를 나눴는데요! 새삼 올해는 가을 날씨가 길게 이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말마다 날씨가 좋아 여기저기 다니기도 좋습니다. (인파를 이겨낼 자신만 있다면요!)
다음 절기가 '입동'인만큼 다가온 겨울을 준비하며 남은 가을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은 가을을 어떻게 즐기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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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로 시작되는 시가 뭐더라?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서정주의 국화라고 인터넷 검색을 하니 ‘국화 옆에서’라는 제목이 나온다. 그래도 시인이 생각이 나서 다행이다. 학교 국어 수업의 효과가 남아 있나 보다. 전체적인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첫 구절만 애매하게 기억하는 시들이 제법 있다.
꽃밭 한구석에 국화가 피었다. 국화는 서리가 내리는 시기 즈음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지난 봄, 줄기가 한창 자랄 때 잘라주지 않아 멀대처럼 키가 자란 국화가 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땅에 누워서 꽃을 피웠다. 장마 오기 전 줄기를 잘라주어야 줄기가 튼튼해지고 꽃을 무성하게 피운다고 하였는데 시기를 놓쳤다. 여름 접어들어 자르면 꽃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여 그냥 두었더니 꽃은 피었으나 힘이 없다. 그래도 제법 꽃을 피워 가까이 가면 국화 향이 코끝에 스며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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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화 중에서도 소국을 좋아한다. 진한 초록색 줄기와 이파리 위로 노란색, 하얀색, 보라색 작은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이 좋다. 서정주가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라고 시에 표현했듯이 볼수록 다정한 꽃이다. 다른 곳에서 소국을 보게 되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가운 마음이 든다. 생명력도 강해서 땅바닥에 누워있는 줄기가 뿌리를 내려 스스로 개체 수를 늘리기도 한다. 겨울 차가운 땅에서 겨울나기를 하고 봄이 되면 진초록의 잎을 어김없이 밀어 올린다. 봄이 되어 자란 가지를 잘라주는데 잘린 가지를 다시 심으면 뿌리도 잘 내린다. 꽃병에 꽂아두면 다른 꽃보다 오랫동안 피어있다. 다른 꽃들이 서리에 시들어 사라질 즈음 국화는 서리 속에서 예쁘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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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카락에도 서리가 점점 내린다. 거울 앞에서 눈에 띄는 한 가닥을 뽑는다. 나에게도 지금이 국화를 피우는 계절일까? 소쩍새처럼, 먹구름 속의 천둥처럼 울었던 시절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화려하지 않아도, 향기를 내뿜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소국처럼 누군가에게 다정하고 반가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꼭 줄기를 잘라주어서 튼튼하고 무성한 국화가 피도록 해야겠다. 누워있는 줄기를보니 애처롭고 안타까워서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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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강
1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시절,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이 계절에도
우리는 불안과 무상을 느낀다.
첫 얼음이 언 것처럼 우리는 왠지 불안하다.
이럴 때 철학책을 읽어보자.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김하현 옮김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마이클 슈어, 염지선 옮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여행지를 찾아가는 형식으로 철학가의 고향에서 느끼는 철학을 소개하는 책. 막연히 교과서에서 스쳐지나갔던 철학자를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에세이와 같은 철학 여행서적이다.
저자는 기차를 이용해 철학가의 고향을 방문한다. 철학가가 살았던 마을이나 집, 심지어 카페까지 앉아보며 그들이 고민하고 체계를 잡은 철학적 사고를 자신에게 투영하며 설명을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저자도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힘들다. 소로처럼 세상을 보는 법을 터득하고 싶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에피쿠로스처럼 즐기고 싶지만 이 역시 어렵다. 심지어 10대 딸과 함께 여행을 하며 철학적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항상 무시당한다. 새벽에 간신히 출발한 철학여행은 정오에 간디와 공자를 만나고 황혼에 이르러 스토아학파처럼 자연에 순응하고 몽테뉴처럼 죽은 법까지 이어진다.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고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저자의 생각은 더 간절하다. 늙음과 죽음을 수용하라고 한다.
살아가는데 철학이 왜 필요한지 알고 싶다면 그래서 철학책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기자 출신인 저자가 각 철학의 개념을 그나마 쉽게 잡아준다.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에미상을 두 번 수상한 저자는 드라마 PD다. 그는 윤리철학을 바탕으로 등장인물들의 도덕적 행동을 유쾌하게 풀어낸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그렇게 알게 된 윤리철학을 책으로 엮은 윤리철학 입문서다. 인류가 직립보행과 집단생활을 하면서 들어왔던 마음의 소리에 대한 이야기. 무엇이 더 옳고 덜 그른가. 나쁜 행동 이후에 왜 우리의 마음은 불편한가? 저자는 이런 일상 속에서 우리의 윤리적 양심과 행동에 대해 설명한다. 더 나가 이웃과 좀 더 잘 지내기 위한 나의 행동을 윤리철학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물론 자신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자신이 직접 겪은 다양한 윤리철학의 고민과 후회 까지 생생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서부터 실존주의 윤리까지 윤리철학의 주요 생각과 결론 그리고 이어지는 의문점까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 인간인 내가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이 필요한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어떤 의견을 나눠야 할까? 마지막 13장 ‘사과의 기술’만이라도 제대로 실천하면 나부터 더 좋은 삶을 살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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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공간을 만드는 상강, 창덕궁 후원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입니다. 제법 추워진다 했는데 가을이 이렇게 빨리 가버리다니,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길에 떨어진 은행 열매만 피하다 겨울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상강은 서리가 내리는 시기입니다. 본격적으로 추워지는 때이므로 곡식은 서리를 맞아 맛이 없어지기 전에 수확을 해야 하고, 서리를 만드는 찬 공기 탓에 나무는 성장을 멈추고 에너지를 비축하기를 시작합니다.
에너지로 가득했던 푸른 잎을 물들이며 이제 그만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나무에게는 인내와 오래 참음의 시작이지만, 알록달록 변해 가는 나무와 숲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설렘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옅은 노란빛만 보여도 가을이 왔다며 사진으로 남겨놓는 설레발은 혼자만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울창한 숲이 울긋불긋하게 변하는 압도되는 광경에 감명을 받기도 하지만, 도시에 사는 우리는 옛날 옛적 누군가 심어 놓은 고궁 안 거대한 은행나무에, 길 따라 심어놓은 노란빛 터널에, 오래된 후원에서 즐겼을 단풍놀이에 더 자주 감탄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비일상적인 알록달록한 나무와 함께 있는 궁궐의 전각이, 유명 카페의 커다란 창문이, 사이를 가로지르는 시원한 도로가 구조적인 미를 더해 주며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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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미적인 의도를 갖고 만들었을 단풍과 공간의 조화는 창덕궁 후원에서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창덕궁은 조선의 궁궐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궁궐로, 자연과의 배치가 조화롭고 정서가 잘 담겨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창덕궁 후원은 산자락과 주변 지형을 따라 공간을 자연스럽게 배치해, 다른 나라의 정원과는 사뭇 다르게 친근하고 여유로운 풍류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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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단풍철 후원의 풍경은 많은 계절 중 가을을 후원을 감상하기에 가장 완벽한 시기로 뽑는 이유가 됩니다. 산자락 경사를 따라 알록달록한 단풍이 겹쳐지고 사이마다 화려한 듯 우아한 전각과 정자, 연못이 자연을 감상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제시하는 공간적 구성이 단풍의 절경을 더해주기 때문입니다.
가을의 마지막 상강입니다.
출퇴근길 냄새나는 은행 열매를 이리저리 피하느라 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불만 섞인 한숨을 쉬다 가을을 보내기가 아쉽다면, 고개를 살짝 들어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리는 은행잎에 감탄하며 올해의 가을이 가기 전 몇 장 기록으로 남겨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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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번지
사전 예약 후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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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무드 인디고>
날씨로 마법을 부리는 영화
날씨에 따라 특정 호르몬이 나와 스트레스를 높인다거나 습도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연구 결과가 종종 발표된다지만 그 연관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하루종일 우리 주변을 감싸는 이 '날씨'는 분명 기분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극적인 변화를 만들진 몰라도 지금 내 기분의 이유를 만들어 내니깐요.
영화에서도 날씨 변화는 극적인 효과를 줍니다. 우중충한 날씨, 창을 뚫을 듯한 빗소리,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극한의 추위 등 이야기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어떤 분위기를 만들고 관객을 더 몰입하게 만듭니다. 오늘은 특히 날씨 변화가 영화 속에서 두드러지는 두 편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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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 2001-2003
과거 온 중간계를 지배할 뻔 했던 '사우론'의 절대반지가 다시 깨어나며 평화롭던 세계는 다시 악의 세력과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절대반지를 파괴해야 하는데요. 이를 위해 중간계의 여러 종족이 모인 반지원정대를 결성하고 전쟁을 막기 위한 여정을 떠납니다.
판타지 영화계의 교과서이자 가장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라고 할 수 있는 <반지의 제왕>입니다. 전통 판타지 세계관 속, 가장 평화로운 마을 샤이어의 '호빗골'부터 악의 본진인 '모르도르'까지 긴 여정을 떠나며 정말 많은 지역이 등장하는데요! 그럼에도 반지원정대이 거쳐오는 곳들은 모두 인상깊고 심지어는 일관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는 분명 극명한 '날씨 묘사' 덕분입니다.
'선과 악'이라는 분명한 구분 덕분인지 영화는 꽤 명확한 비유와 표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맑은 날씨에서는 희망찬 분위기 속에서 든든한 지원군을 만나고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는 인간의 깊은 딜레마를 던지며 마치 편두통을 일으키는 듯 합니다. 또, 화산재가 하늘을 가득 채워 빛이 볼 수 없는 곳엔 역시 절대악이 존재하죠.
이러한 드라마틱한 요소는 놀랍게도 실제 지구의 지질학적 특성과도 흡사한 부분이 많아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장대한 판타지 속에서 자칫 복잡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명확하게 전달한 데에는 이런 날씨의 힘이 강하지 않았을까요?
*<반지의 제왕> 전편은 웨이브와 시리즈온에서 대여/구매해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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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드 인디고> L'écume des jours, 2019
자신의 발명품으로 부자가 된 콜랭과 한 철학자에 심취한 시크는 우연히 클로에와 알리즈를 만나 각각 사랑에 빠집니다. 두 커플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나가고 각자의 방식으로 고난을 겪으며 네 사람의 인생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아름다운 미장셴과 독특한 연출을 만들기로 유명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로 역시 영화는 톡톡튀는 상상과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이죠! 두 사람이 구름 모양 자동차에 올라 함께 도시를 구경하는 장면은 사랑을 해봤다면 눈으로는 못해도 가슴으로 이해되는 그런 장면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달달한 연애를 표현한 것도 날씨라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비극적인 모습도 날씨를 통해 전달됩니다. 특히, 한 공간에서 대비되는 두 날씨로 표현한 한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누군가와 사랑을 하며, 혹은 인생을 살며 겪는 변화를 과한 판타지로 표현해 관객이 이를 현실로 가져왔을 때 더욱 와닿게 만드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좋았던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누구나 경험하는 '기후'를 장치로 쓴다는 점이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무드 인디고>는 현재 시청할 수 있는 플랫폼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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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가 양력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매해 같은 날짜인지도 모른 채 흘려보냈던 절기를 실감 나게 보내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일 년에 스물 네번, 격주에 한번, 당신의 메일로 절기가 찾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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