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입동은 올해 그 어느 절기보다 가장 잘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언제 추워지나 수군거리다 불쑥 겨울이 왔습니다.
그만큼 겨울 분위기가 물씬 나는데요. 여러분은 언제 겨울이 왔다고 느껴지시나요?
달팽이와 경쟁하다.
어느덧 11월이다. 11월이 되어도 한낮 기온은 반소매 옷을 입을 정도로 따뜻함을 지나 더위를 느끼는 날이 이어졌다. 입동 전에 비가 올 것이고 그 이후로는 기온이 많이 떨어질 것이라는 날씨가 예보되었다. 정말 두 달 정도 내리지 않던 비가 굵게 이틀 쏟아졌다. 정말 기온이 떨어질까? 반신반의했는데 비가 그친 아침 날씨는 자연스럽게 외투를 찾게 만들었다. 추위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입동 즈음의 쌀쌀한 바람과 기온을 떨어뜨리는 굵은 비가 꽤 반가웠다. 계절은 계절마다 기대되는 날씨가 있다. 계절에 알맞은 날씨가 찾아와야 ‘그래도 아직은 지구가 망하지 않았군’이라는 지구적 관점의 걱정을 덜게 된다
입동 전 또는 직후 김장을 해야 김장이 가장 맛이 있다고 한다. 올 9월 초에 심은 배추와 무가 쑥쑥 자라는 중이다. 입동에 수확해서 김장을 하기에는 배추와 무가 덜 자랐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김장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경쟁자가 있다. 바로 달팽이. 배추에 구멍이 숭숭 났다. 한 포기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그래. 그건 네가 먹어라.’ 하고 양보했을 텐데 달팽이는 모든 배추를 뷔페 먹듯이 먹고 있다. 보이는 대로 달팽이를 잡지만 구멍이 자꾸 늘어난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크기에서 엄지손톱 크기의 달팽이들이 붙어있다. 작은 체구에 얼마나 먹을까 싶은데 꽤 먹성이 좋아서 내 배추를 모두 먹어 치울 것 같다. 기온이 떨어지면 달팽이도 좀 사라질까 하여 입동의 쌀쌀함을 기다리기도 하였다. 달팽이들아 그 정도 먹었으면 나머지는 나의 것이니 이제 그만 물러나는 것이 어떨까?
제주도에서는 입동 날씨점을 본다고 전해진다. 즉, 입동에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바람이 독하다고 하는데 따뜻하던 날씨가 급격히 서늘해지는 것이 올해 겨울바람은 독하려나?
입동
추위가 온다.
변화의 시대,
조선후기 새로운 사상을 설파했던
실학자의 책 두 권을 소개합니다.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세상 이치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던 책
‘의산문답’과 ‘연암 산문집’입니다.
📚입동에 소개하는 책
『의산문답』, 홍대용, 정성희 번역 해설
『연암 산문집』, 박지원, 박수밀 옮김
의산문답
조선 실학자 홍대용은 35살인 1765년 작은 아버지를 따라 중국 연경에 갔다 온다. 그곳에서 천주교의 교리를 듣고 연경 지식인들과 다양한 교류를 한다. 홍대용의 생각과 사상이 확장된 것은 그곳에서 접한 지식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에 가기 전부터 이미 연암 박지원과 의견을 나누는 관계였다. 심지어 숨어 지내는 실학자들과 함께 새로운 과학 기술방식을 연구해 ‘홍천의’ ‘후종(자명종)’을 만들기도 했다.
의산문답은 42살에 지은 것으로 ‘허자’와 ‘실옹’이라는 가상인물의 질문과 대답을 통해 지구의 탄생과 우주의 비밀, 그리고 바다와 육지 등 만물의 변화 등에 대해 설명한다. 당시 조선지식인의 골수까지 심어진 중화중심의 사고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홍대용의 삶은 지식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우리끼리만 공유한 내용’과 ‘나만 결정한 것’이 절대적이라는 착각은 나약하다. 의산문답을 통해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지식인의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연암 산문집
조선 실학의 대표 인물인 박지원이 쓴 산문집을 엮어서 옮긴 책이다. 박지원의 사상을 깊게 알게 하는 원문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호질’ 이나 ‘예덕선생’ 이야기가 포함돼 있다. 이 책의 묘미는 조선 실학자의 글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하기, 책 읽기, 그리고 생활 속에서 만나는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은 물론 세상을 보는 방법까지 쉽고 재미있고 가슴 뭉클하게 연암의 사고를 알게 한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 후기. 연암은 진정한 친구에 대해 소개한다. 똥 푸는 일을 하는 엄 행수의 가식 없는 행동과 욕심 없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삶을 통해 새로운 인간형을 보여준다. 또 연암은 책 읽은 요령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먼저 요약을 하지만 책 속에 함몰되지 말고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보나 지식을 꿰뚫어야 한다고 말한다.
독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책을 읽으면 글의 정수를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쌀쌀한 겨울을 앞둔 시절에 조선 실학자의 글 한 줄 한 줄이 추위에 맞설 수 있게 한다. 여기에 박수밀이라는 옮긴이의 해제가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알록달록한 공간을 만드는 상강, 창덕궁 후원
겨울의 시작, 입동입니다.
‘11월이 아직도 따뜻하다니,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어림도 없다는 듯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아직 두터운 겨울옷에 익숙지 않아 방심한 사람들은 얄팍한 가을 옷깃을 여미며 따뜻한 집을 향해 급한 발걸음을 옮겼을 것입니다.
생일이 입동 즈음이라 자신의 생일만 되면 하얀 입김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런 게 어디 있냐며 웃고 넘겼지만 오늘 참 신기하게도 어김없이 뽀얀 입김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겨울이 온 것입니다.
하얀 입김이 신기하면서도 새삼스러운 것은 시리도록 선명한 겨울 풍경 사이에서 뽀얀 김으로 잠시 풍경에 불투명도를 주기 때문입니다. 잠시 생겼다 사라지는 그 불투명도를 계속 즐기기 위해 우리는 후~ 하는 입김을 종종 내뱉는 것 아닐까요.
도시에서도 순간 나타나는 뽀얀 입김처럼 낯선 불투명도로 도심을 걷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건물이 있습니다.
출처: architechu
청계천을 걷다 마주치는 투썸플레이스 서린동청계광장점입니다.
유리블록을 전면에 쌓아 올린 이 카페는 불투명과 반투명 유리블록을 조합해 사람 실루엣을 표현했지만 몽글몽글한 게 꼭 구름 같기도 입김 같다고도 하면 어떨까요.
콘크리트와 알루미늄 창틀, 유리창으로 날카롭고 선명한 도시 풍경 사이에 쏙 숨어 누군가 뱉은 입김처럼 피로한 눈에 불투명함으로 휴식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출처: architechu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도시의 풍경은 더욱 모자이크 되어 사라지고 유리블록을 통해 들어온 빛이 낭랑한 새로운 공간이 시작됩니다.
전면에 쌓아 올린 유리블록의 감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좌석을 과감히 포기하고 1층부터 3층까지 시원하게 뚫려 도시를 피해 뽀얀 입김 속으로 들어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입김이 나오기 시작하는 추운 입동입니다
갑작스러운 찬 공기에 놀라 잔뜩 움츠리고 걷겠지만, 어느새 찾아온 겨울을 뽀얀 입김으로 맞이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렇게 시간의 변화를 체감해 보는 것은 차가운 공기도 반갑게 만들지도 모를 일입니다.
투썸플레이스 서린동청계광장점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17
월-금 오전 07:00 ~ 23:00
토-일 오전 8:00 ~ 23:00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피어 스트리트 파트 2: 1978>
잘 만든 두시간짜리 예고편
겨울 첫 관문인 입동이 왔습니다. 벌써 기온이 훅 내려가며 오늘 아침에도 패딩을 입은 사람들을 보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입동은 겨울의 예고편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직 '진짜 겨울'은 오지 않았습니다.
시리즈 영화를 보던 중에도 그럴 때가 있죠. 다 보고 나왔더니 잘 만든 2시간짜리 예고편을 본 듯한 기분이 들 때! 특히, 한창 시리즈 영화가 성행했던 2010년대에는 영화계의 큰 흐름과 과제로 대두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영화를 좋아합니다. 속편에 대한 기대를 높여주면서 다음 영화가 나올 때까지 또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니까요! 오늘은 속편에 대한 기대를 높여준 두 편의 영화를 준비했습니다.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Harry Potter and the Half-Blood prince, 2009
제 주변 해리포터 팬들 사이에서도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라고 생각하는데요! 바로 해리포터의 여섯번째 시리즈인 <해리포터와 혼혈왕자>입니다. 무려 다섯편의 빌드업 끝에 최종장인 마지막 영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앞둔 영화였는데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시작으로 해리 포터와 그 주변인물들의 성장이 마무리되며 그들에게 가장 큰 시련과 아픔을 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전편의 유쾌한 분위기보다는 어두컴컴한 분위기가 <혼혈왕자>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때문에 많은 혹평도 받았지만 마치 거대한 악에 맞서기 위한 폭풍전야와 같은 분위기가 다음 편을 더욱 기대하게 만듭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유난히 겨울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번 겨울에도 한번 정주행 달려보는 건 어떤가요?
*<해리포터> 전편은 웨이브와 쿠팡플레이에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피어 스트리트 파트 2: 1978> Fear Street: 1978
<피어 스트리트>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독특한 형식의 공포영화 시리즈입니다. 1994년 미국에 한 작은 마을 '셰이디사이드'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십대들이 파헤치며 생기는 공포스러운 사건을 다룬 <피어 스트리트 파트 1: 1994>를 시작으로 1978년에 벌어진 일을 다룬 파트 2와 1666년을 배경으로 하는 <피어 스트리트 파트 3: 1666>로 마무리되는 시리즈입니다.
넷플릭스에서 3주마다 공개된 각 편마다 하이틴 호러, 슬래셔, 오컬트 등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를 톡톡히 재현해낸 것이 특징인데요! 그런 장르적 표현을 통해서 '셰이디사이드'에 내린 300년의 저주와 그로인해 벌어진 사건을 역순으로 파헤치며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꽤나 흥미롭고 신선합니다. 세 편이 전부 공개된 후 봐서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는데요.
특히, 파트 2는 가장 기괴하고 잔인하면서도 점점 미스테리가 풀리며 본격적으로 관객을 '셰이디사이드' 세계에 몰입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그로인해 파트 1에서 만난 주인공들은 과연 모든 수수께끼를 풀고 이 마을의 저주를 풀 수 있을 까하는 의문을 남기며 끝이나 파트 3를 위한 완벽한 징검다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 시리즈의 하나 재밌는 점은 각 파트가 끝날 때 다음 영화를 위한 짧은 티저를 공개하는데요! 이 티저를 너무 잘 만들어 지금까지 본 본편보다도 티저가 더 재밌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편인 <피어 스트리트 파트 3: 1666>은 모든 면에서 수작인 공포영화라고 생각하기에 꼭 도전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