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먼저 피는 꽃밭

텃밭을 일구고 화초를 심기 전에는 날씨에 그리 민감하지 않았다. 출근하기 위해 입을 옷과 관련된 그저 더운가, 추운가, 맑은가, 흐린가 하는 궁금증 정도의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다 텃밭과 꽃밭을 일구면서 일기예보를 매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비는 식물이 자라기에 적당한 양이 오는지,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식물이 타 죽지는 않을지, 바람이 너무 세서 꺾이지는 않을지 강수량과 온도, 풍속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식물을 기른다는 것은 자연을 더욱 민감하고 세심하게 느끼게 한다.

물의 회귀, 제주김창열미술관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되는 날, 우수입니다.

점점 외투가 가벼워지고 더 이상 어깨를 움츠리고 걷지 않아도 되는 이 시기야말로 눈이 녹아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지겨운 겨울이었지만 날씨가 풀려가는 걸 느끼다보니 물방울 같은 요즘을 좀 더 오래 느끼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귀여운 물방울을 오래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작고 동그란 물방울은 또르르 흘러가버리거나 어느새 다른 물방울들과 뭉쳐 찰랑이는 웅덩이가 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물방울을 오래오래 보고 싶은 만큼 볼 수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김창열미술관입니다.  

김창열 화백에게 물방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로 되돌려 보내는 회귀의 행위입니다.

미술관의 관람 동선 역시 대지 본래의 경사를 그대로 받아들여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중정을 한바퀴 돌고 옥상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옥상에서 미술관의 전체 모습을 즐기고 다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내려오면 미술과 입구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야말로 회귀의 동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 물이 얼고 다시 녹아 비가 되는 물의 회귀적 여행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우수입니다.

김창열 미술관에서 회귀의 동선을 따라 회귀의 행위를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제주김창열미술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883-5

월요일 휴무

화-일 오전 12:00-오후 6:00

*하절기(7월~9월): 오전9시 - 오전7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윤희에게> 2019

새봄을 맞이하는 해동의 여정

대학교에서 만나 지금도 붙어 지내는 친구가 졸업했습니다. 졸업식은 끝이라는 섭섭함을 남깁니다. 하지만 곧 섭섭함은 곧 우수 뒤에 얼음같이 녹아 무언가 시작되리란 설렘으로 바뀝니다.

세상 모든 일에 졸업식처럼 아름다운 끝맺음이 있지는 않습니다. 몸 어딘가에 녹지 못한 채 남아있는 얼음 조각은 시도 때도 없이 코끝 시리듯 마음을 아리게 만듭니다. 우수에 소개할 영화는 임대훈 감독의 <윤희에게> 입니다.

‘윤희’는 학창 시절 ‘진정한 행복’을 주는 ‘쥰’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그 사랑을 정신병이라 불렀고 둘은 그렇게 멀어집니다. 그 뒤 윤희는 ‘같이 있으면 외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밀어내고 오로지 딸 새봄만을 위해 삽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윤희의 딸 ‘새봄’은 우연히 쥰의 편지를 발견하고 윤희와 함께 쥰이 있는 오타루로 떠납니다.

눈이 그칠 줄 모르는 오타루의 겨울, 윤희는 마음속 커다란 얼음 조각을 녹일 수 있을까요? 끝을 내지 못해 녹지 않는 차갑고 무거운 과거와 대면하고 ‘새봄’을 맞이하려는 윤희의 여행을 응원하게 될 겁니다.

눈이 쌓여 새하얀 배경에서 모험을 펼치는 새봄과 점점 변화하는 윤희, 새봄만을 바라보는 애인경수,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쥰의 모습이 교차하며 지나갈 때 풋풋함과 애틋함을 동시에 느끼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서로에게 부치지 못한 윤희와 쥰의 편지 낭독과 아련한 삽입곡은 영화의 분위기에 더욱 빠져들게 만듭니다.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이 모두 끝난 뒤 나오는 윤희의 편지 마지막 한 문장은 가장 큰 울림을 남깁니다. 영화에서 꼭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삽입곡을 남기고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24절기가 양력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매해 같은 날짜인지도 모른 채 흘려보냈던 절기를 실감 나게 보내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일 년에 스물 네번, 격주에 한번, 당신의 메일로 절기가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