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시원해지려나? 입추 🐿

절기를 실감나게 보내는 네 가지 방법

2023. 8. 8.

🌿세 번째 절기, 경칩

입추

제가 지내는 서울은 아직 한여름 더위입니다. 올해는 날이 특히 더 푹푹 찌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처서 쯤 돼서야 더위가 간다고 합니다. 가을이라니 아직 멀기만 해 보입니다.

딱 한 가지 부쩍 하늘을 감상하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느낄 때 가을이 오긴 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올 여름에 무엇을 놓쳤을까 셈을 해봅니다.

<너와 나>, <소년유랑>, <지구 종말 vs. 사랑>

여름이 지겨울 땐 정동진으로 가자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정동진 독립영화제는 장마가 끝나고 가장 뜨거운 8월 초에 열립니다. 열대야와 선선한 바람이 은근히 섞이는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영화를 소개합니다.

<너와 나>, 2022

수학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 다리를 다쳐 수학여행을 가지 못할 수도 있는 하은이와 그런 하은이와 꼭 함께 가고 싶은 세미가 겪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내내 과장된 뿌연 녹색 화면은 세미가 꾼 '하은이가 죽어있는 꿈'을 닮았습니다. 하루 동안 펼쳐지는 여러 상황은 세미와 하은이의 우정처럼 끈끈하면서도 어딘가 위태롭습니다. 그것이 가장 일상적인 하루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들이 떠날 수학여행이 모두가 아는 사건이라는 암시가 나올수록, 그들이 보내는 혼란스러운 하루가 가장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세미와 하은이가 자아와 타아를 교체하며 영화 내내 많은 존재와 이름을 만납니다. 그 관계에서 제삼자는 없습니다. 오직 '너와 나'만이 있습니다. 2014년 4월엔 오직 나와 '너'밖에 없었다는 걸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됩니다.

<소년유랑>, 2023

친구들끼리의 밈이 있습니다. 바로 '독영재' 독립영화재질의 줄임말입니다. 조금은 못된 표현입니다. 독립영화 특유의 과장되게 시니컬한 대사나 독특한 분위기를 말합니다. 우리끼리 그런 분위기의 사진을 찍거나 말을 하면 '독영재'라고 합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독영재'의 정점에 있는 영화였습니다. 뚝뚝 끊으며 치는 대사, 뮤직비디오 같은 화면과 연출, 신비로운 분위기의 인물들.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결말. 저와 함께 본 친구는 곧바로 '이게 진짜 독영재다!'하고 놀랐습니다.

곧바로 진행된 GV에서 이루리 감독님께 들은 영화의 제작 의도와 메시지는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고 직접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본 저만의 기억으로 남겨두겠습니다. 그 의미를 맞추실 수 있다면 한번 도전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소년유랑>에 나온 대표적인 '독영재' 대사는 "우리 몸은 신당이잖아?", "토마토는 단단한 걸 골라"

<지구 종말 vs. 사랑>, 2023

저의 이번 정동진독립영화제 최고의 영화! <지구 종말 vs. 사랑> 입니다.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해경과 윤진은 공동 글짓기를 해내야 합니다. 하지만 윤진은 해경의 기습 고백을 거절한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쓰고자 하는 주제도 윤진은 '종말', 해경은 '사랑' 이 둘은 카페에 앉아 둘 중 어떤 이야기가 더 고차원적일지에 대한 양보없는 토론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온 글 '지구 종말 vs. 사랑'은 과연 어떤 내용일까요?

글쓰기 주제를 정하는 상황 하나만으로 이렇게 위트있는 대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너무나 다른 윤진과 해경의 캐릭터성을 대사만으로 표현하는 능력도 대단했습니다. 다만 최고는 글쓰기 수업에서 발표하는 바로 그 작품! 듣는 내내 이건 어쩔 수 없이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 수 밖에 없다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구 종말과 사랑, 어떤 이야기가 더 끌리시나요?

입추

아마도 뜨거운 여름이

어서 빨리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절기가 아닐까?

하지만 여름 더위는 막바지 기승이다.

📚입추에 소개하는 책

『당신의 인생을 바꾸는 100대 여행지』, 얀팸 그라우크 지음, 김지연 옮김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옥 옮김

당신의 인생을 바꾸는 100대 여행지

2010년 국내에 소개된 팸 그라우크의 ‘당신의 인생을 바꾸는 100대 여행지’는 지금 읽어도 여행의 기본을 바꾸는 새로운 시각을 전달한다. 이 책을 처음 접할 당시만 해도 여행 자체에 대한 기대나 가능성이 작았다.

그래서 막연히 “이런 여행도 여행이구나‘ 또는 ”이것도 여행이라고 할 수 있나“하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부자 농장에서 별 관찰하기‘ ’말 없이 주말 보내기‘ ’자원봉사 휴가를 떠나 노숙자 돌보기‘ 등등이다. 세계적인 여행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하니 그녀가 소개하는 이 여행지들이 그냥 황당한 곳이 아니라 현실에서 존재하고 이미 많은 사람이 그 여행지를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100대 여행지는 ’예술여행‘ ’자원봉사 여행‘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웰빙 여행‘ 등 4개 주제로 소개하고 있다. 여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지금 올해 내 휴가가 얼마나 재미있고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했는지를 다시 추억하며 사진을 보고 있을 때 팸 그라우트가 소개하는 100대 여행지는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물론 당신의 인생을 바꾸는 100대 여행지에는 스키 리조트나 낚시 여행, 자전거 여행, 도보 여행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100대 여행지에 방점을 찍을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인생을 바꾸는‘이라는 말에 무게를 둬야 한다.

무더위를 간신히 버티고 있을 당신에게 추천하는 이 책은 어쩌면 인생 자체가 여행이니 한순간 한순간 여행지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가길 바라는 것일지 모르겠다.

듄

1965년 대중에게 공개된 프랭크 허버트의 장편 SF소설 ‘듄’은 모두 6권이다. 영화 ‘듄’은 이 가운데 1, 2편을 기본으로 만들었다. 듄은 우리들이 사랑하는 SF영화 ‘스타워즈’의 모티브가 된 소설이다. 그리고 SF소설의 시초를 달리는 작품이다.

시초를 달리는 작품이라고 하지만 그 내용의 방대함과 소설 속 세계관은 앞으로 있을 SF소설의 모든 모티브로 작용할 것이다. 황제가 다스리는 우주는 물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막에서 생산된 스파이스라는 광물질을 기반으로 존재한다. 사막에는 스파이스를 지키는 ‘모래벌레’가 수정 같은 이빨을 번득이며 진동하는 모든 사물을 삼킨다. 황제는 위협 인물이 될 모든 가문이나 정치인을 숙청한다.

폴의 가문도 황제에 의해 숙청되고 폴은 사막에서 생존하는 프레멘에 의해 새로운 정치 지도자로 성장한다. 그런데 폴은 이미 우주의 새로운 메시아가 되는 예지몽을 꾼다. 하지만 자신이 신격화 되는 과정에서 수 많은 우주전쟁을 예지하면서 괴로워 한다.

뜨거운 모래바람과 숨 막힐 듯 불어오는 모래 폭풍 그리고 물주머니를 달고 사는 사막의 인간들. 하지만 우주의 평화를 위해 이들은 예언자의 뜻에 따라 하나로 단결해 간다. SF영화나 SF소설이 독자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황당한 이야기가 전개되거나 새로운 상상력이 돋보여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세계관이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매일 더워져 가는 세상을 구원해 줄 새로운 지도자를 꿈꾸는 것처럼.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요, 초소책방

초소책방

더위가 식어가는지도 모른 채 지내다 보니 가을의 시작, 입추가 되었습니다.

여름의 찜통 같은 더위는 우리를 지치게 하지만, 다른 계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청량함과 싱그러움 또한 여름의 매력입니다.

뜨거운 공기를 잔뜩 품고 있는 거대하고 푹신한 구름과 쨍한 파란빛의 하늘, 햇빛을 잔뜩 받아 눈부실 만큼 선명한 녹색을 자랑하는 나무들. 백이면 백, 여름 하면 떠오르는 풍경입니다.

가을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제 나무들은 초록빛을 잃고, 쨍한 하늘과 바다는 점차 겨울에 어울리는 차분한 색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여름과 이별하고 가을을 맞이할 준비는 다 되었나요. 아니면 끝나가는 여름이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여름의 풍경을 눈에 담고자 하나요.

여름을 떠내 보내기는 아쉽지만 더위에는 지칠 대로 지쳐버린 우리를 위한 공간이 있습니다.

햇빛과 뜨거운 공기가 들어오지 못하는 시원한 실내이지만 자연 속에 둘러싸인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출처: 서울특별시

인왕산 초소책방은 50년간 청와대를 지키는 초소로 사용되다 2018년 방호구역의 변화로 시민들에게 개방된 건물입니다.

폐쇄적인 초소의 골조를 그대로 살리되, 인왕산과 서울 시내를 모두 만끽할 수 있는 조망의 공간으로 바뀐 것입니다.

초소책방은 인왕산 등산로 중간에 있기 때문에 등산이라는 이용 행태를 분석해 인왕산의 풍경을 담는 열린 공간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출처: VMSPACE, 「space(공간)

등산객은 인왕산에 올라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견디며 바람을 느끼고 풍경을 즐기러 오기 때문에 초소책방 또한 산의 경치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입니다.

초소책방의 창호는 슬라이딩 도어를 사용해 닫혀있을 때에도, 열려있을 때에도 내부와 외부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더위에 지친 등산객들에게 자연과 하나가 되는 목적을 같이 하면서, 잠시 더위를 피해 쉬어갈 공간이 되어 주는 초소책방입니다.

가을로 넘어가기 전, 여름의 끝은 아쉬우나 찜통 같은 더위는 지겨운 우리에게 여름의 풍경을 눈으로 한껏 담아 갈 수 있는 초소책방에서 시원섭섭한 여름과의 이별을 준비해 보길 바랍니다.

인왕산 초소책방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왕산로 172

월-일 오전 8:00~오후9:50

기다림

여름휴가를 위해 대서 전 집을 떠나 2주 동안 집을 비우고 돌아오니 꽃밭과 텃밭이 풀숲이 되었다. 어느 것이 잡초이고 어느 것이 화초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지경이었다. 내가 심은 화초와 작물은 뜨거운 햇볓에 바짝 시들어 가고 있었지만 잡초들은 그 속에서 아주 뿌리를 힘껏 내려 있었다. 장마 후 무더위로 흙들은 바짝 말라 있어 잡초를 걷어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피해 아침 일찍 눈곱도 떼지 않고 마당에 나섰다. 딱딱하게 굳어있고 갈라진 흙에서 견고하게 뿌리를 내린 잡초를 힘껏 뽑아내느라 손아귀에 힘을 잔뜩 주었더니 작업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손에서 뜨거운 열이 느껴졌다. 한여름 무더위를 이기지 못해 말라버린 식물들을 뽑아냈더니 군데군데 숭숭 비었다. 마른 줄기와 뿌리를 보니 미안하고 안타깝다.

화분에 심어놓은 몇 개도 한여름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말라버렸다. 집을 비우기 전 그늘을 찾아 한군데 잘 모아두고 물을 주도록 부탁해야 하는데 무심히 두었던 화분들이었다. 뜨거운 자리를 피해 그늘을 찾아주고 선선한 아침 시간에 물을 주고 돌봐야 하는데 세심히 돌보지 못한 2주의 타격이 크다. 화분에서 마른 식물을 털어냈다.

이제 입추라고는 하지만 아직 햇볕이 쨍하고 뜨겁다. 본격적인 가을 전 태풍이 온다. 살아남은 식물들이 넘어야 할 고비들이 많다. 웃자란 가지를 치고,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하고, 분갈이 하고, 퇴비를 뿌려주고 등등 해야 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