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하고 해뜰 날을 기다림

소서 이후 이곳은 매일 흐린 하늘이다. 폭우는 없으나 항상 회색빛 하늘과 흩뿌리는 비 날씨다. 소서 전에 우거진 잡초를 한바탕 뽑아냈는데 잡초들이 금세 자라났다. 아침마다 들여다보는 일기예보는 2주 이상 비 날씨만 보여준다.

땅은 늘 축축하게 젖어있다. 여기저기 달팽이들이 텃밭 작물에 들러붙어 있다. 빨래들도 눅눅한 물 냄새가 나는 듯하다. 식물들이 광합성은 하고 있나? 하는 생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뭔가 자라는 듯하지만 쨍하고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고 비실거리며 키만 커지는 것처럼 보인다.

쨍한 햇빛이 그립다.

2주 이상 흐린 날씨 속에 지내다 보니 북유럽 사람들이 왜 남부유럽으로 여름휴가를 떠나는지 이해된다. 흐리면서도 후덥지근한 날씨는 사람의 마음도 우울하게 한다.

바싹 마른 빨래에서 나는 햇빛 냄새가 그립다.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이 그립다. 태양을 향해 바짝 고개를 들고 있는 해바라기가 그립다. 민소매 입은 팔에 와닿는 햇살의 따가움이 그립다. 선글라스를 껴야 편안히 쳐다볼 수 있는 파란 하늘이 그립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햇빛 쨍한 이베리아 반도로.

<디센트>

한여름, 동굴에서, 맞이하는, 진실

뻔하지만 통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름에 보는 공포영화가 대표적이죠. 과거에도 여름에 시원한 영화관에 들어가면 공포영화의 무서운 포스터가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웠던 것이 생각납니다. 저는 공포영화를 좋아합니다. 잘 만든 공포영화를 찾았을 때의 쾌감은 꽤 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무서운데 이렇게 잘 만들었다니! 심지어 그 영화를 우연히 찾았다면 쾌감을 배가 됩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무더운 지금 가장 잘 어울리는 동굴 공포 영화 <디센트> 입니다.

<디센트> The Descent, 2005

사고로 가족은 전부 잃은 주인공 사라의 친구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라를 위해 모여 새로운 출발을 위한 동굴 탐험 여행을 떠납니다. 잠시 들렸다 나올 수 있을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전혀 다른 깊은 동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입구마저 함몰되며 동굴에 갇힙니다. 출구를 찾기 위해 동굴을 탐험하다 미지의 존재를 만나고 살아남아 동굴을 탈출하기 위해 흩어집니다.

다섯 명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이 그룹은 익스트림을 즐겼던 인물들인 만큼 능숙하게 동굴을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예상치못한 상황에서는 패닉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거기에 생명에 위협을 받고 어쩌면 영영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몰려오며 끈끈한 줄 알았던 그들 사이도 점점 무너져내립니다. 설상가상 사라의 사고와 관련된 진실마저 차츰 밝혀지며 갈등의 골을 깊어집니다.

동굴이라는 어둡고 위험한 환경은 배경적인 공포를 자아냅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꽤 능동적으로 상황을 진전시킵니다. 외부에서의 위협에는 어느정도 대응을 할 수 있을 법한 상황에서 그들 사이가 흔들릴 때 처참히 무너지는 그저 외적인 공포에 편승한 전개가 아니라는 점이 굉장히 신선합니다.

 여름에 시원한 동굴을 들어가 더위를 피하듯 인물들을 따라 미지의 동굴을 탐험해보세요. 동굴보다 더 서늘한 존재, 그리고 그보다 더 소름돋는 그들 사이의 갈등과 진실을 만나보세요. 공포영화임에도 의도된 리얼함으로 의외의 유머요소가 있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디센트는 왓챠,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숨 참고 러브다이브, 영주실내수영장

영주실내수영장

몹시 더운 대서입니다. 열 번도 넘게 겪었을 대서이지만, 매년 찾아오는 더위는 새삼스럽게 괴롭기만 합니다. 올해는 더군다나 더위와 함께 극한 호우로 인해 생활의 불편을 겪었을 뿐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을 잃기도 한 슬픈 여름입니다.

장마와 함께하는 출근길은 누구에게나 고역입니다. 만원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땀과 습기가 섞인 공기를 서로 내뿜으며 맞닿아있는 것은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진을 다 빼놓습니다. 이렇게 덥고 습한 날, 역경을 이겨내고 출근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며 종종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습해서 수영해도 될 것 같아요."

그만큼 끈적이는 공기 속에서 걷고 있자면, 차라리 물속에 몸을 담가 습기조차 잊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도심 속에서 수영을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커다란 수영장은 빽빽한 도시에서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시설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집 근처에 수영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반갑기까지 합니다. 대학 수강신청보다 더 힘들다는 수영 강습 신청을 성공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주민들에게 환영받는 많은 수영장 중 공간적으로도 멋진 수영장을 소개할까 합니다.

영주시에 하나밖에 없는 공공수영장인, 영주실내수영관입니다.

영주실내수영장은 사람, 물, 소리, 빛이 뒤엉킨 공간입니다. 첨벙거리는 소리와 말소리가 웅얼거리는 수영장만의 울림은 수영장을 환상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더욱이 영주실내수영장의 천창과 콘크리트 루버는 물 위로 자연광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빛의 패턴을 만들고 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광이 물결에 반사되어 생기는 빛은 영주실내수영장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수영장의 풍부한 자연광은 중정으로 연결되는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잔디와 어우러져 야외수영장의 느낌까지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물이 없는 곳에 물을 모아 수영을 할 수 있게 만든 가장 인공적인 공간이지만 자연광과 유리창을 사용해 기존의 외부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마술 같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공건축물이 이토록 쾌적하고 세심하게 꾸려진다는 것은 흔한 기회가 아닙니다.

이것은 수영장이 들어서는 지역을 세심하게 살핀 설계자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설계자의 의도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판단을 한 지방자치단체의 애정 덕분이라고, 수영장 설계를 맡은 설계자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공간에 대한 애정과, 지역에 대한 애정이 뭉쳐서 만들어진 수영장은 빛과 물, 소리,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토를 갖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덥고 습한 이 여름을 잠시나마 잊고 싶다면, 시원한 물에 몸을 풍덩 담가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몸의 열과 마음의 열을 전부 식힐 수 있는 그런 피서가, 여름휴가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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