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문을 닫을 시간, 처서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입니다. 여름 동안 우리를 깨물며 괴롭히던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서매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분명히 끝날 줄 모르고 푹푹 찌는 더위의 연속이었는데 처서가 지나면 마법처럼 선선한 공기가 불며 더위가 가신다는 것입니다. 처서매직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면서부터 처서매직 신봉자가 된 저는 이번 여름도 어김없이 처서를 기다렸습니다.
신기하게도, 정말 마법처럼 처서날 저녁 공기는 너무나도 시원해 잠들기 전까지 한참 동안 창문을 열고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했습니다. 다시 더워진다는 예보가 있기는 하지만 처서날만큼은 어김없이 시원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이 조금 위로받는 듯합니다.
날씨와 계절 같은 자연현상은 언제 변하는지 모르게 시간의 흐름을 따라 슬그머니 변하는 것인데, 처서만큼은 문을 열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듯이 '짜잔'하고 기온이 바뀌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처서만큼 공간적인 절기도 없는 듯합니다.
우리는 문을 통해 공간과 공간을 넘나들 수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문은 벽으로 막혀 별개의 공간이 된 곳을 이동할 수 있게 하는 장치입니다.
문은 닫혀있을 수도, 열려있을 수도 있지만 열려있다고 해서 두 개의 공간이 하나의 공간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 이유는 벽과 문을 통해 공간을 구획함으로써 공간의 종류를 나누는 일을 이미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 이쪽과 저쪽은 다른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건축물과 예술에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찰에서의 일주문이 그렇고,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 문이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