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를 실감나게 보내는 네 가지 방법 곡우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입니다.
곡우가 되면 봄비가 내려 심었던 작물이 기름졌는데요. 그런 동시에 보릿고개의 마지막 고비였다고 합니다.
새해를 맞으며 세웠던 계획, 성과가 나오길 기다리는 당신의 프로젝트에 고비가 찾아와 힘든가요? 조금 더 힘내봐요.
이제 다 왔을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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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르는 것은 기다리는 것
주말에 오일장에서 사 온 모종을 심었다. 처음에는 여름에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조선오이 (제주에서는 물외라고 한다)와 애호박, 고추 모종만 사올 생각하고 장에 갔다가 두 눈 가득 들어오는 모종들을 보고 욕심이 생겼다. 백오이, 가시오이, 가지, 토마토, 맷돌 호박, 치커리, 아스파라거스, 딸기까지 데려와서 심었다.
겨우내 비워 두었던 꽃밭에 꽃모종들을 심었다. 천일홍, 금잔화, 데이지, 한련화 등등 꽃모종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텃밭에 심을 모종을 사러 갔다가 꽃 파는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안개꽃, 데모루 등등 양손 가득 데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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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만 하고 그냥 쑥쑥 자라주면 좋으련만 심고 나면 해야 할 일이 가득이다. 모종을 심고 물을 주었다. 뿌리가 잘 내려주기를 바라면서. 아침마다 일기예보를 검색한다. 오늘은 비 예보가 없나? 곡우에 가물면 그해 농사를 망친다고 했다. 비가 와야 심은 것들이 잘 자랄 수 있는데, 비를 기다린다. 비가 너무 와도 안 되는데, 날씨가 맑아야 딸기가 잘 열릴 수 있는데. 마음이 미리 그려둔 꽃과 열매를 일기예보를 검색하면서 기다린다. 지금 거름을 주는 시기가 맞는 것일까? 하면서 거름을 주고 오이가, 토마토가, 호박이 쑥쑥 자라서 색 고운 열매를 맺혀주기를 기다린다.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을 기른다는 것은 기다림이다. 때로는 내 마음에 그려둔 결과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때에 맞춰 이러저러한 일을 하면서 기다린다. 내가 기르는 모든 생명에 나의 최선과 하늘의 기운이 닿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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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봄비
근정전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입니다. 봄비가 내려 곡식이 윤택해진다는 의미입니다. 꼭 풍년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이 아니더라도, 미세먼지로 답답한 봄 하늘을 잠시나마 개운하게 해주는 봄비는 유달리 반갑습니다.
아직도 길을 걷다 소소한 봄의 흔적을 발견하면 겨울이 끝났음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데, 벌써 봄의 마지막 절기가 다가왔습니다. 때이른 벚꽃과 유난히 건조했던 숲, 마스크로부터의 해방을 즐길 새도 없이 불어닥친 미세먼지까지. 다사다난했던 봄을 잘 견디고 떠나보낼 준비를 시작할 때입니다.
봄과의 작별 인사를 봄비가 만들어주는 개운한 공기로 마무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사가 될 듯합니다. 개운한 공기를 기다리는 우리만 봄비가 반가운 것은 아닙니다. 조선의 궁궐 경복궁의 근정전 역시 봄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는 비 오는 날의 근정전의 모습을 경복궁의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로 소개합니다.
“비 오는 날 꼭 근정전으로 와 박석 마당을 보십시오. 특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여기에 와보면 빗물이 박석 이음새를 따라 제 길을 찾아가는 그 동선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물길은 마냥 구불구불해서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하수구로 급하게 몰리지 않습니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 유홍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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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과 자연의 조화를 중요시했던 우리나라 건축에 걸맞은 바닥재 박석과 물이 만나 만들어낸 효과입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구불구불 아름답게 빗물이 흐르는 근정전의 마당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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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서 봄비를 즐기는 두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현대적 도시의 모습과 위용 있는 궁궐의 모습을 함께 눈에 담을 수 있는 경복궁에서 4월 23일까지 경복궁 야간 관람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 생긴 경복궁 바닥의 물웅덩이는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잠들어있던 밤의 경복궁을 생생하게 느끼는 것과 동시에 봄비를 통해 도심 속의 전통건축이라는 서울 고궁의 고유한 특징을 색다른 방법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경복궁 야간 관람은 사전 예약제로 진행되고 있어 관람일의 날씨를 예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테지만, 혹여나 관람일에 비 소식이 있다 하더라도 실망보다는 색다른 경복궁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광화문에 들어설 수 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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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
서울 종로구 사직로 161
화요일 휴무
경복궁 야간 관람 (2023.04.05~2023.04.23)
19:00 - 20:00 사전 예매 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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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 <소년시절의 너>
오늘만 넘기면 된다던데요?
곡우는 보릿고개의 마지막 고비입니다. 지금이 지나면 부쩍 자란 곡물에 배를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런 기대만을 가지고 하루를 버텨냅니다. 우리 인생에는 이와 비슷한 시기가 있습니다. 바로 청소년기입니다.
세상은 청소년들에게 모든 행복이 미래에 있는 듯 말합니다. “잠은 죽어서 자라”는 행복을 너무 멀리 던져버립니다. 연애는 대학가서, 꾸미는 건 졸업하고, 노는 건 수능 끝나면…! 하지만 그런 말을 아무리 들어도 청소년은 오늘의 행복을 찾아냅니다. 오늘은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에게서 또는 함께 미래보다 멋진 현재를 만들어 나가는 청소년 영화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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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 Coda, 2016
제목인 Coda는 청각장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본 영화에도 정확히 같은 상황의 주인공 루비가 등장합니다. 루비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루비의 아버지와 오빠를 도와 매일 아침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으러 떠납니다. 루비에게 가족 곁에 남는 것 외의 미래는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런 루비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또 잘합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 사실을 알 수가 없죠. 루비의 재능을 알아본 Mr.V 선생님만이 루비를 전문 교육을 받도록 돕습니다. 루비는 가수가 되는 자신의 미래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들 곁에 남아 있어야 하는 현재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행복만 가득해 보이는 미래와 답답한 현재라는 이분법적인 접근으로 시작하지만 영화의 끝에서 전혀 다른 선택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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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절의 너> 少年的你, 2019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시험만 잘 친다면 멋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우등생 ‘첸니엔’이 있습니다. 첸니엔은 안그래도 힘든 삶에서 학교폭력까지 당하며 점점 더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첸니엔 앞에 양아치 ‘베이’가 나타납니다. 둘은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며 의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진 세상은 둘을 절대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첸니엔과 베이의 삶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듭니다.
“엄마는 나이 들면 좋은 게 있대요. 잘 잊어버린다고. 결국 다 잊을 테니 신경쓰지 마세요. 하지만 어른 되는 법은 아무도 안 가르쳐 주네요.”
영화의 영어 제목는 Better Days입니다. ‘더 나아진 날’을 기약하며 현재를 하염없이 감내해야만 하는 이들을 잘 표현한 제목 같습니다. Better Days만을 기다리며 살던 첸니엔 앞에 나타나 첸니엔의 오늘을 지키겠다 말하는 베이, 이 둘의 절절한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현재 왓챠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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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에서 루비가 부른 OST "Both Sides Now"로 글을 마무리 지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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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바람의 코멘트🌫️
빗물이 흐르는 것처럼
이제 세상은
본격적인 순환의 고리를 돌아서
활기찬 활동을 시작합니다.
📚춘분에 소개하는 책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저/ 김은령 옮김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박문재 옮김
침묵의 봄
봄이 오고 비가 내리니 꽃이 피었는데 가장 큰 걱정은 꿀벌이 없다는 것이다. 벌이 없으니 유실수는 존재 이유가 없어지게 됐다. 아니 존재가 사라지게 된다. 번식이라는 숙명을 타고 난 생명 존재이기에 자연의 순환에 이렇게 민감한 것이겠지. 하지만 순환은 꼭 우리가 겪었던 경험치 만큼만 움직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변수에 의해 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고 다시 연결되고 또 다른 자연순환계를 만들지 않을까? 레이첼 카슨은 자연의 순환이 정상적이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여러 제보자의 편지를 과학적으로 종합하고 그 문제점을 깊이 있게 정리했다. 봄이 왔는데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벌의 붕붕 소리가 없다면, 이제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봄비가 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의 자연순환계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다행히 올해 봄비가 왔으니 밭작물은 힘차게 성장할 것이고, 꽃나무는 꽃을 피워 세상을 밝히겠지. 이런 순환이 언제까지 계속되기를 바랄뿐. 우리가 자연순환계에 악영향을 덜 미치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인간이 살아 움직이는 한 그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유토피아
인간 세상에는 결코 유토피아가 없겠지. 그런데 토머스 모어가 상정한 ‘유토피아’를 사람들이 읽고 읽어서 지금까지 고전으로 인정하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꿔야 한다’는 인간의 꿈(이상) 때문이 아닐까?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관료들에게 영생이라는 꿈을 심어줬다고 한다. 그들에게 유토피아는 현세가 아니라 내세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는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돈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돈에 대한 탐욕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 결과 수많은 사회문제가 제거되었고, 수많은 범죄가 근본적으로 뿌리 뽑혔습니다.”라고 소개했다.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것은 현재의 사회에 대한 고찰이 우선. 그런데 많은 사람은 현재의 삶의 고찰과 변화에 집중하다 보니 미래에 대한 꿈을 버리는 경향이 있다. 현재의 사회를 자세히 보면 바꿔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 모든 모순을 한 순간에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그 모든 모순을 일시에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결국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가 정답이라고 생각. 인간 세상에는 결코 유토피아는 없지만 시대와 세대를 흘러가면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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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가 양력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매해 같은 날짜인지도 모른 채 흘려보냈던 절기를 실감 나게 보내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일 년에 스물 네번, 격주에 한번, 당신의 메일로 절기가 찾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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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으로 들어서는 입하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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