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
눈이 많이 오는 계절로 이제 진짜 겨울이다.
눈이 오는 겨울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를 함께 읽으면 어떨까?
『토지 1부』, 박경리 대하소설 2002년 1월 1쇄본
『토지 2부』, 박경리 대하소설 2002년 1월 1쇄본
토지 1부
2002년에 구입했던 소설책을 20년 만에 다시 읽는다. 2002년 출판된 책이지만 나는 2010년에 읽기를 시작했다. 당시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서희라는 여성의 강인한 존재감만 기억난다. 당시에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흥분이 교차하던 시기. 혹은 가정을 이루고 식구를 위해 일하던 시절. 주변을 돌보기보다는 오직 앞만 보고 가야 했던 시절. 그 시절에 나는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은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책에 머리를 박고 ‘이것에 집중하는 나를 절대로 건들지 말라’는 무언의 항의였던 시절. 그렇게 책을 읽던 시절이라서 토지에 대한 감흥을 알지 못했다. 좀처럼 그 당시 독서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대하소설을 내가 다 읽었다는 자부심만 남았다. 토지 1부 1권 첫 장에 이렇게 쓴 글이 보인다. ‘2010. 4.29 22시 45분 피곤한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라고. 그렇게 읽었던 토지를 지금 다시 읽는다는 것은 마치 겨울 흰 눈이 쌓인 산비탈을 걷다가 뒤돌아 자신의 발자국을 보는 기분이다. 이 길을 어떻게 왔느냐고 생각하며.
박경리 작가는 토지 1부를 쓰던 중 암을 발견한다. 수술을 받은 몸으로 토지 1부를 썼다고 한다. 토지는 내용도 그렇지만 작가의 글쓰기도 겨울 찬 바람 같다. 우리 역사처럼. 토지 1부는 최씨 가문이 몰락하고 평사리 마을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기까지의 내용이다.
토지 2부
토지 2부는 쫓겨나듯이 고향을 떠난 서희와 평사리 사람들이 용정촌에 정착한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내용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지만 길상이, 용이, 월선이, 김훈장, 영팔아제, 두만네, 임이네, 봉순이, 영만이, 칠성이, 두메, 공노인, 홍이, 상현, 환이, 혜관스님, 이상현 등 이야기 속 등장인물의 이름을 부르면 좀처럼 정리할 수 없다. 마치 삶의 질서를 찾을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은 우리의 인생이 생각하고 마음먹은 것처럼 흘러가지 않는 것과 같다.
토지에 나오는 인물 모두는 자신들의 어깨에 무거운 돌덩어리를 하나씩 이고 지고 나온다. 눈이 날리는 들판에 우두커니 서서 자신의 서글픈 이야기를 조용히 말하기도 하고, 억울해서 미쳐 날뛰기도 한다. 어쩌면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 알 수 없는 목표를 향해 가는 것과 같다.
서희가 냉혹하게 준비하고 계획한 그대로 조준구와 홍씨에게 복수를 하고 다시 땅과 집을 되찾고 평사리로 돌아오지만 길상이는 서희와 함께 오지 않는다. 50대 중반에 '토지'를 읽으니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을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 왜? 라는 질문이 필요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우리의 삶도 분명하고 뚜렷한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과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