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를 실감나게 보내는 네 가지 방법 하지
여름의 네 번째 절기, 하지입니다.
여섯시, 일곱시가 지나도 여전히 밝은 것이 새삼 느껴졌더니 하지입니다. 아마 가장 유명한 절기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하지 전후로 해 가뭄과 장마에 대비하느라 바쁜 절기 중 하나이지만 유럽권에서는 가장 여유로운 시기로 뽑힌다는 점도 재밌습니다.
가장 바쁘거나 가장 여유롭거나 가장 빛나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요즘 어떨 때 가장 빛이 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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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 21분
일 년 중 낮이 길이가 제일 길다고 하여 얼마나 길까? 하여 한국천문연구원에 집 주소를 입력하여 일출, 일몰 시간을 알아보았다. 낮의 길이 14시간 21분, 일출 시간 5시 25분, 일몰 시간 19시 47분이라고 나온다. ‘본 계산식에서 나온 값들은 어떠한 법적 효력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는 유의 사항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24시간 중 14시간 이상이 낮이라니 계산으로 확인하니 느낌이 확실하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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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기상 시간은 큰 변화가 없지만 퇴근 후에도 남아있는 빛은 저녁에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여유를 준다. 가방만 던져두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텃밭의 호박 꽃자루에 열매가 잘 영글고 있는지, 손가락 만하게 자라고 있는 오이는 오늘은 얼마나 더 자라있는지 실눈까지 뜨면서 가늠한다. 파종한 얼갈이, 쑥갓은 얼마나 순이 나왔는지, 점점 더워지는 낮 열기로 시들고 있지는 않은지, 고추와 토마토는 오늘 몇 개가 열려있는지(어제와 다르지 않음을 알지만) 확인하러 그리 넓지도 않은 텃밭을 누비고 다닌다.
낮 동안의 열기로 화분의 수분이 날아가 가뿐하게 들리는 화분들을 한곳에 모아 놓는다. 낮 동안 힘들었겠네, 이제는 시원해 질거야 혼자 중얼거리면서 한바탕 호수를 끌고 다니면서 물을 뿌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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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당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도 아직 빛이 남아 있어서 시간을 선물 받은 것처럼 여유롭다. 정말로 어스름해지면 마당의 백합 향이 바람이 실려 온다. 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여름꽃은 흰색이 많다고 한다. 다양한 색의 백합들이 있지만 역시 백합은 하얀색이 이름에 걸맞다. 나팔같은 하얀 백합이 여름마당을 화려하게 장식해주어 보는 마음이 시원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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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길에서 감자 수확하는 밭을 보았다. 감자 수확은 하지가 제철이라고 하여 햇감자를 ‘하지감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오늘 저녁에는 ‘하지 감자’ 사러 가야겠다. 오늘 저녁 메뉴는 하지감자로 만든 감자전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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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멘탈>
햇살이 가득한 영화
햇살이 땅을 뜨겁게 덥히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이런 영화를 소개하는 게 맞나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불굴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햇살캐’가 등장하는 영화를 모았습니다.
오늘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유난히 짜증이 몰려왔습니다. 내 앞사람이 도저히 일어나지 않아 한시간을 일어서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발걸음이 가벼워야 할 퇴근길에도 부정적인 기운이 올라왔습니다. 한번 쏟아지는 짜증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옵니다. 날이 밝아질수록 제 마음은 어두워져만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을 잃지 않는 캐릭터가 그들의 에너지로 세상을 밝게 만드는 영화를 소개합니다. 바로 얼마 전 개봉한 <엘리멘탈>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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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멘탈> Elemental, 2023
<엘리멘탈>은 4원소로 유명한 물, 불, 흙, 바람을 의인화한 세상 ‘엘리멘탈 시티’를 그린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그 중 불 종족 ‘엠버’가 자신과 상극인 물 종족 ‘웨이드’를 만나며 생기는 일을 다룹니다.
엠버의 부모님은 ‘불’들의 고향에서 대도시인 ‘센트럴 시티’로 건너온 이민자입니다. 어렵게 삶의 터전을 꾸렸고 그런 모습을 엠버는 보고 자랐습니다. 엠버는 불 같은 자신의 성격을 꾹 숨긴 채 삶을 살아갑니다. 활활 타오르는 겉모습과 쾌활한 엠버는 유난히 물 종족 ‘웨이드’ 앞에서는 자신을 숨깁니다.
물 흐르듯 사람을 편하게 만들고 공감을 잘하는 웨이드는 엠버보다 더 밝고 따뜻합니다. 엠버는 그런 웨이드 앞에 자신이 온전히 들어날까 움츠러들지만 이내 햇빛에 겉옷을 벗듯 자신을 맘껏 표현합니다. 너무 따뜻한 상대방에 내 약한 모습이 드러날까 겁이 났던 적이 있으신가요? 결국엔 누구보다 편한 사람이 되어버리진 않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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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낮의 길이가 가장 긴 시기에는
그 만큼 많은 활동, 많은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을 위한 일이 아니라
유익한 일을 해야 한다.
『군주론』, 니콜라 마키아벨리
『유토피아』, 토마스 모어
군주론
군주와 대통령을 비교하는 것은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지만 한 나라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비교한다면 재미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국민(인민)과의 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에서 여론에 민감한 현재의 대통령제와 비교할 만하다.
예를 들어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국주는 항상 같은 인민과 함께 살아야 하지만, 늘 같은 귀족과 살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군주는 언제든지 자신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귀족에게 지위를 줄 수도 있고 빼앗을 수도 있으며, 그들의 특권을 빼앗거나 되돌려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렇게도 말했다. “군주는 자신의 이익을 따지지 않는 조언자를 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느 누가 하든 관계없이 훌륭한 조언이란 군주의 현명함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훌륭한 조언에 의해 군주의 현명함이 비롯될 수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군주든 대통령이든 그들에게 최고의사결정권을 주는 것은 결국 국민(인민)을 잘살게 하기 위해 우리 인간이 만든 제도일 뿐이다.
그래서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인민)의 봉사자로서 군주와 대통령을 비교하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있다.
유토피아
최고의 국가는 어떤 것일까? 최고의 공화국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토머스 모어는 이렇게 쓰고 있다. “만족을 모르고 탐욕스러운 극소수의 사악한자들은 국민 전체가 살아가기에 충분한 부를 저들끼리만 나누어 가집니다. 하지만 그런 부자들조차도 결코 행복하지 않고, 유토피아 사람들이 경험하는 그런 행복을 절대 누리지 못합니다. 유토피아에서는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돈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돈에 대한 탐욕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회문제가 제거되었고, 수많은 범죄가 근본적으로 뿌리 뽑혔습니다.”
전쟁에 대해서는 더 재미있는 서술이 있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른 나라가 전쟁을 알리는 선전포고를 하면 비밀요원을 동원해 적국의 왕을 죽이는 자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지급하거 적국을 배신하도록 유도하고 그에게 엄청난 금액을 주거나 토지를 주거나 전쟁의 주모자를 암살하도록 매수합니다. 토머스 모어는 그렇게 해서 대규모 전쟁으로 각국의 군사나 국민이 무고하게 학살되는 피해보다는 몇 명의 주모자나 전쟁을 일으킨 왕이 죽는 것이 훨씬 피해가 적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전쟁을 피하기 위한 외교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말한 것이 아닐까. 이 밖에도 토머스 모어는 기본소득과 공공주택, 6시간 노동정책, 경제적 평등을 이상적인 국가의 요소라고 설명하고 있다. 500년 전에 펼쳤던 이상 국가를 향해 현대국가들이 한 걸음 한 걸음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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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가장 오래 보는 곳, 마로니에 공원
마로니에 공원
낮이 가장 긴 날, 하지입니다.
정오의 태양은 가장 높게 떠 있고, 1년 중 가장 긴 경로를 따라 해가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물체는 그림자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우리가 가만히 있더라도 절대 정지하는 법이 없고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낮 시간의 대부분을 형광등이 만드는 희미한 그림자와 함께 지내지만 만약 하루 종일 밖에 서 있는다면 하지인 오늘, 그림자의 키가 1년 중 가장 오랜 시간 변화하고 있을 것입니다.
키가 커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늘의 일몰시간인 오후 7시 56분을 기다렸다가 그림자의 키를 맘껏 누려보길 바랍니다. 일출시간인 오전 5시 10분은 너무나도 이른 시간이니까요.
그림자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은 재미있습니다. 누군가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것이 아니라면, 변화를 조금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정적으로 보이는 건물조차 변화무쌍한 모습을 만들어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역시 태양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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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 드리우는 그림자의 모습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과 아르코 미술관입니다.
혜화역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지나치지 않을 수 없는 곳인 마로니에 공원은 온통 벽돌로 둘러싸인 벽돌의 공간입니다. 이제는 대학로! 하면 붉은 벽돌! 을 떠올리는 사람이 아주 많을 것입니다.
마로니에 공원의 붉은 벽돌은 공원 뒤편 아르코 미술관과 (구) 샘터 사옥까지 이어져 마치 하나의 공간처럼 보이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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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최소 단위라 할 수 있는 벽돌로 지어졌기 때문에, 벽돌의 요철에 따라 건물의 외벽에는 섬세하면서 아기자기한 그림자가 아름답게 드리워지는 것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르코 미술관을 설계한 김수근 건축가는 벽돌 돌출 부위를 일일이 계산해 미술관 건물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상상하며 벽돌을 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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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연극의 상징 대학로를 걸으며 수많은 사람과, 소극장 포스터에 시선을 빼앗기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붉은 벽돌의 질감과 그림자의 변화에 흥미가 생겼다면, 1년 중 가장 햇빛을 오래 즐길 수 있는 하지에 마로니에 공원과 아르코 미술관에서 햇빛이 그림자로 그려내는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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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 공원과 아르코 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 대학로 8길 1
(아르코미술관)
화-일 오전 11:00 - 오후 7:00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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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절기실감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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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가 양력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매해 같은 날짜인지도 모른 채 흘려보냈던 절기를 실감 나게 보내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일 년에 스물 네번, 격주에 한번, 당신의 메일로 절기가 찾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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