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를 실감나게 보내는 네 가지 방법 소만
여름의 두 번째 절기, 소만입니다.
여름 기운이 가득 들어차며 식물의 성장이 폭발하는 시기입니다. 이때면 모내기가 시작되어 1년 중 제일 바쁜 계절로 접어들게 된다고 합니다.
꽉 찬 일정에 쉬지 못하고 계신가요? 오늘 이 편지를 읽는 동안 잠시 여유를 가져보시는 건 어떤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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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의 독서법』, 미치코 가쿠타니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장하준
서평가의 독서법
분열과 고립의 시대의 책읽기
퓰리처상(비평분야) 수상자인 미국의 유명한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소개하려 한다”며 ‘서평가의 독서법’을 통해 99권(그 이상이지만)을 소개한다.
책을 읽고 내 느낌 그대로 소개하고 아직 읽지 못한 주위 사람에게 그 책을 권하는 정도라면 나도 서평을 써도 되는 것 아닌가? 전문비평가도 아니니 나의 비전문적 책 소개에 대해 큰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한 번 들어봐”라고 권하는 정도로 말이다. 어깨에 힘 빼고 소개하면 되는 기분으로 서평을 쓰자고 또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서평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점을 알려준다. 부담이 크다. ‘분열과 고립의 시대의 책 읽기’라는 부재는 아마도 이 서평가의 독서력을 잘 말해준다.
미국의 건국에서부터 현재 미래의 분열과 통합 그리고 암울한 모습까지, 서평을 통해 정치적 입장까지 알 수 있도록 다양한 책을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에서도 같은 상황이다. 내 조국의 분열과 고립의 시대에 책 읽기를 권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책을 소개할 수 있으려나. 그런 독서력은 얼마나 해야 만들어질까?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논란이 많은 이론일수록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 경제학은 더 그럴 것이다. 장하준 교수가 설명하듯이 하나의 경제학 이론에 기초한 경제 정책은 결국 세상을 험악하게 만들 우려가 크다.
이 책은 경제학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양성만큼 경제 정책도 다양한 시각과 입장과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리에 사용하는 18가지 재료를 통해 왜 우리는 현재의 경제 정책 속에서 살게 됐는지 쉽게 설명한다.
복지정책이 사회주의에서 시작했을 것이라는 편견을 알게 하고 보호주의의 원조가 영국과 미국이라는 깔끔한 소개도 재미있다. 그리고 돌봄노동에 대한 경제적인 설명과 솔직한 자기 고백까지. 그의 경제학 대중 서적을 몇 권 읽었지만, 이 책 역시 주변에 다시 소개하고 싶은 책이다. 어렵지 않지만 심플한 경제학 입문서다.
지금의 영미권 중심의 경제 정책에 대한 우려, 특히 주식시장에 대한 그의 대안들을 조속히 법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시장주의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복지정책을 퍼주기라고 생각하는 시각도 어느 정도 교정을 수 있다.
또 장하준의 소소한 음식평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게 하는 음식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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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명소, 정독도서관
정독도서관
햇빛이 풍부해 여름 기분이 나기 시작하며 식물이 성장하는 소만입니다.
햇빛이 생명에게 미치는 영향은 참 신기합니다. 햇빛으로 에너지를 얻는 식물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해가 나거나 흐린 날씨 탓으로 우리의 기분이 달라지기도 하니 말입니다. 날씨에도, 기분에도 '꿀꿀하다'는 단어를 쓰는 것을 생각하면 따뜻하고 선명한 햇빛이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 보편적인 작동 방법 임에 틀림 없습니다.
무심히 보내기에 아까운 날씨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출근길 혹은 등굣길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손안의 세계에 집중하다, 무심코 눈을 돌렸을 때 잠깐 마주한 하늘을 보고 짧은 감탄과 함께 당장 놀러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해낸 적이 많습니다. 형광등 일광욕을 하기에는 창 밖의 충만한 햇빛이 너무 아깝기 때문입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점심시간을 틈 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친구들과 간식을 나눠 먹으며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았던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커피를 하나씩 쥐고 찌뿌둥한 몸을 깨우는 것이겠지요.
사무실 창 밖의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나 나만의 햇살 명소를 발견하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나만 알고 있는 조용한 장소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길 사람들일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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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주변에서 일상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도시를 벗어나 햇빛과 바람을 몸으로 느끼며 휴식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정독도서관입니다.
정독도서관은 1938년 지어진 경기고등학교의 교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국가등록문화재입니다.
따라서 정독도서관은 근대 건축물의 표준 양식과 질서를 발견할 수 있는 곳입니다.
건물 전면은 벽기둥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중앙 입구가 높게 솟아있습니다. 또 사각형의 창이 질서있게 구성된 입면을 갖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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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도서관이 근대 학교 건축의 유형의 출발점 중 큰 축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독도서관의 내부는 여전히 학교 같은 느낌을 풍깁니다. 도서관은 더 이상 학교처럼 시간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교실마다 공간이 잘게 쪼개져있지도 않지만 누구에게나 학교 공간에 대한 기억이 비슷한 감각으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서관의 앞뜰은 오랜 시간을 지나 어디를 걸어도 나무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최고의 휴식 장소입니다.
앞뜰은 여름에는 빽빽한 나뭇잎으로, 봄에는 흐드러진 벚꽃으로, 가을에는 타는 듯한 새빨간 단풍으로 변함없는 흑백 콘크리트를 보던 직장인의 눈동자를 알록달록 물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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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지금 정독도서관 앞뜰 잔디밭은 야외 도서관으로 꾸려놓고 조그만 서고와 알록달록한 빈백으로 편안하고 비일상적인 휴식공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소만의 풍부한 햇빛을 만끽하기 위해 소중한 점심시간을 틈 타 근처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하며 책 읽는 여유를 스스로에게 선물해 봐도 좋을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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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도서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5길 48
월-금 오전 9:00 ~ 오후 10:00
토-일 오전 9:00 ~ 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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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과 자리물회
요즘 나의 출퇴근 길에는 수확한 마늘이 밭 한가운데 가지런히 누워있는 풍경이 이어진다. 마늘 수확을 하는 일용직 인력들이 그들을 데리고 온 차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국수 같은 아침참을 먹고 있다. 그들의 엉덩이에는 밭일하기에 안성맞춤이 빨갛고 동그란 방석이 매달려서 움직일 때마다 씰룩거리며 춤을 춘다.
수확의 때를 기다리며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가 일렁이는 풍경도 보인다. 모종을 덮고 있던 비닐을 걷어내고 힘차게 줄기를 뻗어내는 단호박들도 눈에 들어온다.
출근길이 농로하고 연결되다 보니 절기에 맞추어 파종하고 수확하는 작물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에 맞추어 나의 텃밭에 무엇을 심을지 언제 수확을 할지도 짐작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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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향토 음식에는 이 즈음에 먹는 음식으로 ‘자리물회’가 있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수확할 시기가 되면 바다에서는 자리돔이 잡히기 시작한다. 자리돔은 다른 돔 종류의 생선들에 비해 작다. 크기가 큰 자리돔은 보리 수확 이후 보리짚에 구워먹었다고 한다.
지금은 보리짚에 구워먹는 모습은 보기 힘들지만 큰 자리돔에 굵은 소금을 뿌려 구워먹으면 작은 크기에 비해 정말 풍부하고 기름진 맛을 느끼게 된다. 작은 크기에 비해 가시가 상당히 단단하여 잘 발라먹지 못하면 영락없이 가시에 찔리기도 한다.
작은 자리로는 물회를 해서 먹는다. 막회를 썰 듯이 잘게 썰어 여러 가지 야채를 넣고 된장 양념을 만들어 시원하게 만든 자리물회는 이 시기에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이 시기에 먹지 못하면 이를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이 내 옆에 있다.
그래서 집에서 만들었다.
분량은 3인분을 준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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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필의 자리물회 레시피(3인분)
1. 자리는 작은 것을 써야 가시까지 잘 먹을 수 있다. 마트에 갔더니 막회용으로 잘게 썰린 것이 있어서 사 왔다.
2. 오이 1, 깻잎 10장, 미나리 500원 동전만큼, 청양고추 2개, 마늘 6~7알, 제피 3줄기를 잘 씻어서 준비한다.
3. 먼저 양념을 만들어 놓는다. 마늘을 잘게 다지고 된장을 숟가락으로 크게 두 숟가락, 고추장은 1/2 숟가락을 넣고 설탕과 매실청, 2배 사과식초를 입맛에 맞게 적당량 (적당히가 제일 어렵다.) 을 넣어 잘 저어서 만든다.
4. 오이와 깻잎은 잘게 채썰기하고, 미나리는 2cm정도 길이로 썰고, 청양고추는 씨를 빼서
잘게 어슷썰기로 준비한다.
5. 1과 4번을 넣어서 잘 섞고 여기에 미리 만들어놓은 양념을 넣어 잘 비벼준다.
6. 5번에 원하는 만큼의 얼음 몇 개를 넣고 생수를 부어 숟가락으로 살살 저어 양념이 물에 잘 풀어지도록 한 다음 먹는다.
원하다면 식초를 더 넣어서 시큼하게 먹어도 된다. 이때, 제피라는 것을 넣어먹기도 하는데 향이 상당히 강하고 독특하여 호불호가 강하지만 개인적 취향으로는 넣어 먹는 것이 자리물회 맛을 더 살리는 것 같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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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 앤 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서로를 가득 채우는
서로에게 너무 의지하지 말라 하지만 또 누군가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가장 자신이 가득 찼다고 느끼시나요? 저는 특히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렇습니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 같이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 바라만 봐도 좋은 사람
생명이 가득 차는 소만, 서로를 만나 서로를 가득 채워가는 여정을 다룬 영화 두 편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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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 앤 올> Bones and All, 2022
<본즈 앤 올>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서스페리아>로 유명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가장 최근작입니다. 앞서 소개한 두 영화에서 각각 다룬 절절한 사랑과 고어한 연출을 고루 섞어 만들어 낸 영화라고 느꼈는데요.
사람을 잡아먹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이터'인 매런과 리가 만나 매런의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섬세하지만 잔혹하게 그립니다. 인간 세계에서 평범하게 살 수 없는 '괴물'이 만나 보여주는 '찐사랑'은 애절하지만 다소 끔찍합니다.
*본즈 앤 올은 네이버 시리즈온, 애플 TV 등에서 유료로 구매/대여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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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Guardians of the Galaxy Vol. 3, 202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이번 달 개봉한 MCU의 신작이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마지막 영화입니다. 이들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가득 채운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인물들이 또 있을까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는 그야말로 가족의 시작과 끝을 시리즈로 완전히 묘사합니다. 우연히 만난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팀을 결성합니다. 팀이 된 후로 산전수전을 겪으며 더욱 끈끈해지죠. 아픔을 공유하고 큰 목적을 향해 함께 나아갑니다. 결국 그 여정은 끝을 맞이합니다.
가족 이야기의가'끝난다'는 말을 들으면 역시나 슬프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가오갤의 끝은 분명 가족의 해체임에도 불구하고 마냥 슬프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런 가족의 끝맺음은 한 가족이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엔딩이기 때문입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극장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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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오갤 3 엔딩에 나와 정말 놀랐던 노래인 Florence + The Machine의 Dog Days are Over로 마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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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절기실감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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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에 씨앗을 뿌리는 망종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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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가 양력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매해 같은 날짜인지도 모른 채 흘려보냈던 절기를 실감 나게 보내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일 년에 스물 네번, 격주에 한번, 당신의 메일로 절기가 찾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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